정주행을 여러 번 했을 정도로 아끼는 작품이다. 결말은 취향이 아니지만 일단 볼거리가 많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고 비주얼도 훌륭하다. 소품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특히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이 보기만 해도 배부른 작품. 중드에서 손을 뗀 지 꽤 된 사람이라면 요즘 나오는 중국 고장극을 한 번 봐보시라. 영상미는 과거의 그것이 아닌 지 오래.
물론 요즘에도 영상미에만 치중한 나머지 스토리는 산으로 날려버리거나 몇 번을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천성장가>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짜여진 스토리와 인물을 한껏 살려주는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2018년 중드계를 달궜다.
(그렇다고 스토리에 대해 호불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성혁명으로 세워진 천성왕조 18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멸망한 대성왕조의 관리였지만 바뀐 황제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여전히 고관대작을 해 먹고 있는 추상기 도독의 집에는 과부가 된 여동생(추명영)과 조카남매(봉지미, 봉호)가 얹혀살고 있다. 눈칫밥 먹고사는 것도 서러운데 추도독의 딸을 대신해 힘없고 빽 없는 6황자에게 시집까지 가게 생긴 봉지미.
황제가 힘없고 빽도 없고 유폐까지 되어있던 6황자 초왕 영혁을 태자에 대한 견제책으로 불러들인 것.
물론 아끼던 여인을 적국의 사내에게 나라의 정보를 넘기고 사통 한 죄로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한 황제가 그녀의 아들인 6황자를 곱게만 볼 리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뒷 이야기가...) 영혁은 살아남기 위해 황제와 형제들 앞에서는 힘없는 모지리 황자를 연기하고 뒤로는 칼날을 갈아왔는데 형제들은 서로 물뜯하지, 아빠는 차갑다가 따뜻했다가 종잡을 수 없지 (여기에도 여러 가지 뒷 이야기가...) 이래저래 가시밭길을 걷는다.
봉지미와 영혁은 혼인 일로 만나 그 뒤로도 얽히고설키며 미운 정 고운 정들어버리는데 밀당하면서 뒤에서 백업 오지게 해주는 영혁도 멋있지만 봉지미 역시 한 똑똑이, 한 성격 하는 인물이라 전개가 시원시원하다. 이후 이런저런 사건을 거쳐 이전의 신분을 버리고 남장을 한 채, 위지라는 이름으로 청명서원에 들어가 열공하는 봉지미. (이미 어릴 때부터 쌍둥이 남동생을 대신해 남장을 하고 학당에 다닌 봉똑똑)
얼마나 똑똑한지-
사실 봉지미에게는 이미 망해버린 이전 황조의 마지막 황제의 아홉 번째 공주라는 출생의 비밀이 있는데,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한 황제 아래에서 적국의 나랏일을 하고 있는 모양새. 국사무쌍이라는 지위를 얻은 위지(=봉지미)는 심지어 일도 잘해(...) 손주뻘이라 마냥 귀여운 데다가 똑 부러지게 직언하고 꾀 많고 처세에도 능해서 황제의 총애를 듬뿍 받는다.
똑똑한 여주인공도 마음에 들고, 퇴폐미 뿜뿜하는 남주인공도 마음에 들지만 (하지만 풀어헤친 머리는 취향이 아니라서 볼 때마다 괴롭)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봉지미의 든든한 호위무사인 남의. 연인과 가족 사이 그 어딘가에 서서 끝까지 지미바라기를 하는 남의를 보며 맴찢했다. 정말 애매한 감정인데 어느 쪽이라고 콕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굳이 보자면 가족애에 좀 더 가까운 순수한 애정의 느낌이라서 좋았다.
마지막 편에서
"네가 어디에 있든 나도 거기에 있을거야, 나는 여기에서 널 기다릴게"
라고 말하는 남의를 보면서 진짜 눈물이 철철 났다. (그랬는데 봉지미 너는...)
역시 서브앓이가 최고야. 굉장히 중요한 역이고 좀 더 비중 있게 다뤄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인기는 없었던 게 안타깝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남의 때문에... 결말이 더... 너무... 으으... 스포 자제... 후... 스포자제...
제작사인 화처미디어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제작사인만큼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다. 한 장 한 장 예술사진같이 주옥같은 포스터가 책자 하나 나올 만큼 많고, 유튜브에는 제작 기록 영상이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올라와있다.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 밀려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면 유튜브에 올라온 메이킹 영상들로 달래 보자.
여담이지만, 여주인공 봉지미 역의 니니는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영화 <진링의 13소녀>에서 술집 여성으로 등장한다. 전쟁의 포화를 뚫고 굳게 닫힌 성당의 벽을 넘어 술집 여성들을 이끌고 들어오는 장면이 기억난다. (물론 이 때도 서브병이 발동해 통따웨이를 앓았다 아아 통따웨이 ㅠ)
당시에는 니니를 잘 몰랐지만 인상이 깊었고 <천성장가>에서 다시 봐 반가웠다. <진링의 13소녀>가 2011년에 나온 영화인데 오히려 지금이 더 어려 보이는 건 화장 탓인지. 연기도 잘하고 자세가 꼿꼿해서 옷태가 잘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아하고 아름답다. 웃을 때는 또 얼마나 예쁜지!! 날 가져요 니니!!!
너무 애정 하는 드라마다 보니 마음 같아선 스틸컷이며 포스터며 죄다 올리고 싶다 ㅠ
고르고 고르느라 정말 힘들었다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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